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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애리조나

정말 큰 미국땅, 이것이 애리조나 우회로의 기본 수준 (플래그스태프-피닉스)

플래그스태프(Flagstaff)에서 차에 주유도 빵빵하게 하고, 식구들은 웬디스에서 햄버거로 배를 채우고 난 후 피닉스(Phoenix)로 출발했습니다. 인터스테이트 I-17을 타고 피닉스 방향으로 40분 내려와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갔어요. 이 휴게소는 울 식구들이 플래그스태프 오고 갈 때 들르는 곳입니다.

 

 

살짝 몸 풀고 난 다음 가져간 물 마시고 간단한 간식도 먹었어요. 장거리 여행할 때마다 트렁크에 물과 음식, 그리고 식구들 각자의 외투는 꼭 준비해 다닙니다.

 

휴게소에는 자생 동물 및 식물에 대한 정보판이 있어요. 이것은 쿠거(마운트 라이언)에 대한 정보네요.

 

저 건너편으로 휴게소가 보여요. 오전에 피닉스에서 플래그스태프로 올라갈 때 들렸던 곳입니다. 손 한번 흔들어 줍니다.

 

 

I-17에서 바라본 주변 경치는 남쪽으로 내려갈 때 더 멋있는 듯해요.

 

 

살짝 붉은 암석이 멀리 보여요. 붉은 암석이 아름다운 세도나(Sedona)가 아마 저 뒤쪽인 듯합니다.

 

세도나가 이 방향인 듯 합니다.

 

애리조나 로드트립 ⑤ 좋은 기운 가득 붉은 암석 세상 Sedona

피닉스(Phoenix)에서 부터 고속도로 I-17을 타고, 애리조나 주 도로 AZ-179로 갈아 탄 후 가고 또 가고. 드디어 세도나(Sedona)에 도착했습니다. 세도나는 꽤 유명한 관광지예요. 그런데도 시에서 운영하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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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잘 풀고 간식도 먹었으니 다시 집이 있는 피닉스로 향해 출발합니다. 그런데 한동안 잘 내려갔는데 도로 전자 안내판에 "고속도로 폐쇄, 우회로 사용"이라고 뜨는 거예요. 설마 했죠. I-17에서 피닉스로 내려가는 우회로는 애리조나 서부에 있는 도시 프레스킷(Prescott)*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엄청 먼 거리를 운전해야 해요. 우회로라고 하기는 진짜 지나치게 멀거든요. 남편이 지금 당장 우회로를 찾아 I-17을 빠져 나가자고 했는데, 애리놀다는 설마 그렇게 멀리 보낼 리가 없다고 우겼어요. 계속 내려가다 보면 고속도로 폐쇄된 근처에 무슨 안내가 있겠지 하면서요.

 

* Prescott은 프레스캇으로 부르는 게 맞는데 현지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프레스킷이라고 발음해요. 그래서 Prescott을 어떻게 부르느냐로 애리조나 주민인지 타지인인지 알 수 있기도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는 현지인이 발음하는 도시명을 따랐습니다.

 

좀 더 내려가니까 저기 먼 곳에서 연기 또는 더스트 데블(dust devil, 회오리바람) 같은게 보입니다. 첫째랑 남편은 딱 보고 연기라고 했는데, 애리놀다는 더스트 데블일 거라고 그랬어요.

 

 

남쪽으로 더 내려 갈수록 연기인지 더스트 데블인지 그 존재가 확실해집니다. 첫째와 남편이 맞았어요. 연기입니다. I-17 근처 어디에서 화재가 난 거예요.

 

 

첫째가 휴대폰으로 뭔 상황인지 뉴스를 찾아봤어요. 뉴스에서는 지금 산불이 나서 I-17이 폐쇄되었다고 합니다.

 

(Source: 3TV/CBS 5)

 

우리 식구들도 결국 I-17 폐쇄된 근처에 도착했어요. 많은 차들이 이미 갓길에 서 있있는 게 보였고요. 보시다시피 응급차량이나 북쪽으로 되돌아 갈 운전자를 위해서 도로는 자체는 비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한 출구 위에 위치한 도시 코르디스 레이크스(Cordes Lakes)로 갔습니다. 사태를 우선 정리하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려고요. 

 

 

코르디스 레이크스에 들어가 I-17 근처에 있는 맥도널드에 우선 주차를 했죠. 차에서 나오니까 옆에 주차한 차의 사람들도 웅성웅성. "우리 프레스킷으로 가야 한대" 그러고 있어요. 이들도 우회도를 찾으려고 잠시 멈춘 사람들이에요. 작은 도시의 맥도널드 매장은 산불 때문에 사람들로 북적북적. 화장실을 들렸더니 다들 우회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런 대화였어요.

 

나 오늘 피닉스 가야 하는데 어떡해. 프레스킷으로 돌아서 가야 한다는데...

 

맥도널드 매장에서 나와 남편에게 화재가 진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떨까 물어봤어요. 남편은 단호하게,

 

이 화재가 언제 진압될지도 모르고 불을 껐어도 열을 식혀야 하기 때문에 금방 I-17 통행이 가능하지 않아. 잘못하면 내일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우회로를 타고 집에 가는 것도 지금 출발하는 게 좋아. 점점 더 많이 차들이 몰려 나중엔 우회로도 막힐지 모르거든.

 

이건 전적으로 남편 판단이 맞아요. 화재가 언제 진압될지 모르는데 여기서 계속 기다릴 수는 없고요. 그래서 AZ-69 타고 우선 프레스킷에 간 후, 꼬불탕 길 AZ-89을 따라 높은 산을 넘고, 최종적으로 피닉스에 들어가는 AZ-60를 타는 이 기나긴 우회로를 향해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이 우회로 거리는 163마일 (262 km). 거기에 해발 6000 ft(1828 m) 이상의 고지대에 놓인 꼬불탕 길 AZ-89은 속도를 낼 수 없어서 걸릴 시간은 총 3시간 20분 예상됩니다. 헐~

 

이것이 애리조나 우회로의 수준

(전체 미국도 아니고 한 주인 애리조나의 우회로 수준이 이래요.)

 

황당했던 게 우리가 출발했던 플래그스태프에서 피닉스까지가 I-17을 타면 145 마일(233 km)예요. 그러니 이 우회로가 원래 플래그스태프-피닉스 거리보다 더 멀어요. (눈물 남) 게다가 우회로 가기 전 플래그스태프에서 화재 장소 바로 전인 코르디스 레이크스까지 이미 81 마일(130 km) 운전해 온 상태였고요. 피닉스까지 겨우 66 마일(106 km)을 앞두고 산불 때문에 163 마일(262 km)을 돌아가야 하다니... 오늘이 하지인데 역시나 하루가 기네요.

 

차들이 더 몰리기 전 프레스킷을 향해 떠납니다.

 

프레스킷으로 가는 도로 AZ-69에서. 저 뒤의 높은 산들은 1800 m를 훌쩍 넘습니다. 우린 저 산을 넘어가야 해요. ㅠㅠ

 

프레스킷도 꽤 아름다운 애리조나 도시예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죠. 언제 한번 프레스킷에 놀러 가야지 했지만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원하지 않았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서 길 찾고, 또 갑작스러운 우회로 운전이라서 프레스킷은 하나도 못 즐겼어요. AZ-89은 프레스킷 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지나 외곽으로 가야 만날 수 있어요. 덕분에 프레스킷을 살짝 보긴 했는데 우리가 지나간 하지 날 도시에서 큰 이벤트가 있는 것 같았어요. 들썩거리고 흥겹습니다. 거기에 기온도 쾌적해 보였고요.

 

다음에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 주마, 프레스킷.

 

프레스킷 방향이 서쪽이었는데 해가 지려는 시간에 운전하니까 지평선 바로 위에 위치한 거대한 오렌지 해 덕에 장님이 되기도 했어요. 길도 낯설고 참 곤역스런 루트였습니다. 코르디스 레이크스를 출발한 후 약 50 마일(80 km) 쯤 운전했더니 드디어 프레스킷 서쪽 외곽에서 AZ-89에 진입했어요. 이제 꼬불탕 산악로를 운전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본 표지판이 순간 황당하고 슬프게 만들더군요. 예상했지만 표지판 숫자를 보니까 또 기분이 달랐어요.

 

피닉스까지 111 마일(179 km)

아~ 황당 슬퍼.

 

이제부터 운전할 AZ-89는 난해한 루트예요. 해발 6000 ft(1828 m) 이상의 산맥을 넘는 도로라서 꾸불꾸불. 엄청납니다. 게다가 도로는 왕복 2차로. 그래서 제한 속도도 느려요. 생각건대 보통은 밤에 이 길을 많이 운전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은 차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운전자들은 거의 모두 우리처럼 오늘 안에 피닉스를 가려는 집념의 인간들인 듯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하지 날이라 해가 길었다는 거예요. 꽤 늦은 시간에도 해가 지지 않았어요.

 

 

산을 오르는 도중 점점 어두워지더니 결국 해가 졌습니다. 이젠 사진을 더 이상 찍지 않았어요.

 

 

꼬불꼬불 산길 AZ-89를 운전할 때는 걱정이 많이 들었어요. 왕복 2차선인 이 산길에서 급한 마음에 운전자 몇이 과속이나 추월을 하다가 실수할까 봐서요. 이곳에서 사고가 나면 모든 차들은 정말로 오도 가도 못하고 도로에서 한동안 갇혀 있어야 해요. 다행히 사고는 없었습니다. AZ-89만 타고 내려오면 이젠 도로는 수월해져요. 속도도 빨라지고요.

 

이 대단한 거리를 운전하고 난 후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30분. 플래그스태프에서 피닉스에 오려고 오늘 운전한 거리는 총 244 마일, 4시간 40 여분입니다. 히야~! (오전에 피닉스에서 플래그스태프로 올라갔던 145 마일(233 km)은 포함하지도 않은 게 이렇습니다. 흑흑)

 

집 근처에 도달하니까 동네가 어찌나 이뻐 보이든지 엄청 반가워요. 집에 들어가니까 달콤이가 눈을 똥그랗게 크게 뜨고 "야옹" 합니다. "왜 이리 늦으셨어요?" 그러는 것처럼요. 음식도 충분히 주고 갔는데 하나도 먹지 않았더군요. 가족들 기다리고 걱정하느라 못 먹었나 봐요. 그래서 달콤이가 좋아하는 특식을 꺼내 줬어요. 금방 싹 비웁니다. 아이고, 짠해라.

 

달콤이가 좋아하는 음식.

 

피곤하긴 했지만 곧바로 자고 싶지는 않았어요. 좀 움직이고 하는데 무릎 부위가 뻐근한 거예요. 우회로 때문에 너무 오래 차를 타서 그런가 했죠. 그런데 나중에 떠오른 생각, '아~ 산행을 했었었지.' 우회로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산행을 했었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있었어요.

 

I-17 산불 상황이 어떤지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산불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I-17 주변은 먼저 껐다고 해요. 울 식구들이 집에 도착한 그즈음인 밤 10시 30분경에 다시 통행을 재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다리던 많은 차들과 잔유 매연 문제로 교통체증이 있다고 하고요. I-17이 다시 열리길 기다리다 지금 10시 30분에서야 피닉스로 출발했다면 아마 자정 넘어 집에 도착했을 거예요. 먼 길이라도 우회로를 돌아 집에 온 게 훨씬 잘한 결정이었어요.

 

오늘 남편이 제일 고생을 했어요. 예상치 않게 운전을 이리 오래 하게 되었는데 짜증 하나 부리지 않고 오히려 농담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웃게 했고요. 첫째는 엄마 아빠가 길을 쉽게 찾게 뒤에서 휴대폰으로 잘 확인해 줬고, 작은 아이들 3명도 모두 엄마 아빠 힘들지 않게 아주 잘해줬어요. 울 식구들 하나같이 다 잘해서 자랑스러워요.

 

I-17 플래그스태프-피닉스

원래 거리 및 소요시간

145 마일(233 km), 약 2시간 10분

 

산불 때문에 우회로로 돌아오느라 걸린

플래그스태프-피닉스 총 거리 및 소요시간

244 마일(392 km), 약 4시간 40분

 

※ 참고: 서울-대구 거리가 237 km, 서울-부산 거리가 325 k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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