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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오늘 하루

어린 시절 추억 속 항공우편, 노래, 그리고 멍멍이 연옥

예전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인가 옆집에 놀러 가면 옆집 아줌마는 독일에 편지를 보내곤 했다. 독일 (당시 서독)에 간호사로 가 있는 언니분에게 보내는 편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빨간색과 파란색 테투리가 있는 국제우편 봉투도 너무나 신기했고, 편지봉투 주소가 꼬부랑 글씨가 쓰여 있는 것도 내겐 너무 신기한 신세계였다.

 

요즘에는 조기교육으로 유치원, 아니 그전부터 영어에 익숙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당시에는 국민학교) 다닐 때 한국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은 당연히 영어 공부는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꼬부랑 알파벳 주소가 쓰여 있는 항공우편 편지봉투는 뭔가 저 밖에 한국과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그 옆집에서는 음악도 다른 걸 들었다. 전축에서 한국 가요가 아닌 외국 노래를 틀었다. 어렸던 나는 이게 미국 팝송인지 독일 가요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냥 전혀 모르는 외국어가 나오니까 모두가 다 미국 노래라고 여겼다. (아주아주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미국 노래 맞았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알지도 못하던 언어로 불리던 그 노래가 맘에 들었는지 아님 옆집 아줌마 덕분에 엄청 들었는지, 나는 내게 들리는 소리 그대로 따라 불렀다. 전체는 다 모르고 반복되는 부분만 따라 불렀다.

하우머치즈댓도기인더윈도. 왈왈. 아두홉댓도기스포쎄~~일.

 

이 노래가 뭔 내용인 줄은 당연히 몰랐다. 멍멍이가 중간에 왈왈하니까 멍멍이에 관한 내용이겠거니 그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옆집은 이사 가고 그 노래도 내게 잊혔다. 하지만 가끔 "하우머치즈댓도기인더윈도. 왈왈. 아두홉댓도기스포쎄~~일" 습관적으로 흥얼거렸다. 여기에서는 멍멍이 왈왈 소리가 아주 큰 포인트다. 그걸 꼭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니까 이 노래가 진짜 존재했는지도 희미해졌다. 옆집의 전축 이외 그 어디서도 이 노래를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년 전부터 미국에 살면서 언젠가 TV 광고였던가, 남편이 무슨 노래 이야기하다가였던가, 이 노래를 다시 들었다. 너무 놀랐다.

이 노래가 진짜 있었던 노래였구나!

 

노래 제목은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 Window?"다. 1952년에 발표된 진짜 진짜 오래된 노래다.

 

 

가장 잘 알려진 버전은 위에 올린 Patti Page가 1952년 녹음해 1953년에 "The Doggie in the Window" 제목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내가 어릴 때 옆집에서 들었던 노래가 Patti Page의 버전일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이 노래가 진짜 존재하는 노래라는 걸 알고 제대로 들어보니까 내가 소리 나는 대로 흥얼거렸던 부분이 상당히 비슷해서 또 놀랐었다.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 window? I do hope that doggie's for sale.
하우머치즈댓도기인더윈도. 아두홉댓도기스포쎄~~일 (내가 기억하는 소리 나는 대로 가사)

 

이 노래를 다시 알게 된 다음엔 가사도 리듬도 귀여워서 한번 머리에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는다. 이젠 멍멍이 연옥 (purgatory, 퍼거토리)에 빠지게 된다. 머릿속에서 계속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 window? 왈왈 I do hope that doggie's for sale." 이런다. 며칠 동안 멍멍이 연옥에서 헤맨 적도 있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오늘도 갑자기 이 노래가 떠올랐다. 크흑~ 또 멍멍이 연옥의 시작이다. 이번엔 머릿속으로만 노래를 흥얼거리고 왈왈하는 부분만 나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왈왈! (역시 추임새~)

 

난 왈왈 소리만 냈는데 거실 다른 편에서 책을 읽고 있던 막둥이 넷째가 이걸 듣고, "How much is that doggie in the window? I do hope that doggie's for sale." 하고 자동적으로 노래를 부른다.

 

막둥이와 난 이렇게 또 멍멍이 연옥에 빠졌다. 구해줘~~~

 

(이미지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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