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애리조나 피닉스는 사막. 오늘 피닉스에 비가 온다. 아까 투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첫째에게 텍스트를 했더니 그곳에도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아파트에서 창밖을 보며 비 구경 중이라고. 투산은 피닉스에서 남쪽으로 약 190km 떨어져 있는데 지금 애리조나 중남부가 비에 젖어 있는 상태인 셈이다.
피닉스에 오래 살다 보니 체험적 통계가 생긴다. 내 체험적 통계에 의하면 보통 12월 중순에 상당한 양의 비가 이틀 정도에 걸쳐 주룩주룩 내린다. 그런데 올해는 2주 정도 일찍 비가 찾아온 것 같다. 12월 중순에 또 비가 올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비오는 모습을 보러 나갔다가 울집 부건빌리어를 살펴보니 꽃이 몇 개 남아 있지 않았다. 녀석들이 잘 자라서 줄기가 튼튼한데 가시도 함께 살벌하게 튼튼하다. 작든 크든 가시에 닿으면 아픈데, 부건빌리어의 큰 가시는 정말 많이 아프다. 조심해야 한다.
비가 오면 왠지 센티멘털해지고 밀가루 음식도 땡긴다. 빗소리 들으며 부침개를 부쳐먹어도 좋은데 난 조용하게 이 비 오는 날을 즐기고 싶다. (라고 쓰지만 귀찮아서가 진짜 속마음이다.) 이번 주 시간적 여유가 있어 보이는 셋째에게 다가가 부탁을 했다.
오늘 비도 내리고 하늘도 우중충한데 소보로 빵이 먹고 싶다.
빵 만들어 줄 수 있니?
기특하게 셋째가 만들어 준다고 답해준다. 자식을 잘 뒀다.
번개 같은 스피드로 빵 반죽을 하고 있는 셋째.
반죽을 발효시킨다.
셋째는 반죽이 발효되는 동안 소보로 땅의 소가 된 사과 필링을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빵 위에 덮을 소보로 가루도 만들었는데 그건 사진을 못 찍었다. 셋째의 손놀림이 빠르다.
히터와 오븐의 열기로 따뜻한 실내에는 소보로 빵의 고소한 향기로 가득 차있다. 포근하고 여유로운 그 느낌 그대로다.
드디어 소보로 빵이 오븐에서 나왔다.
소보로 빵 12개를 만들고 반죽이 남아서 남은 걸로는 시나몬 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시나몬 빵 한 조각을 가져다가 먼저 먹어 봤다. 맛있다.
하지만 오늘 나의 관심은 온통 소보로 빵이다. 아이들도 하나씩 접시에 담아 가 먹는다.
안에 사과 필링도 풍성하게 들어가 있다.
내 것도 하나 찜해서 가져다 먹을 준비를 한다.
조용하고 차분한 토요일 오후.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난 지금 커피 한잔과 셋째가 만든 엄청 맛있는 소보로 빵 하나를 먹고 있다.
이게 바로 찐 행복이다.
울집 아이들은 사막에 살아서 비 오는 날에 우산 쓰고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눈*이 내리는 것에 대한 환상도 꽤 있지만 지금은 비가 내리니까 비를 즐기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 피닉스는 겨울이 포근해서 눈이 내리지 않는 곳이다. 내리는 눈이나 쌓인 눈을 이곳에서 즐길 확률은 아~~~주 적다.
아이들 셋은 저녁 먹고 나가 우산 쓰고 동네를 걸어 다니며 비 오는 날의 낭만을 즐기고 있다. 너무 좋은지 집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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