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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시간/만화와 애니

The Wind Rises (바람이 분다, 風立ちぬ)

애니메이션 자체로만 보면 아주 아름답다. 비행기를 사랑하고 비행기 개발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주력 함상전투기인 제로센 개발자를 주인공으로 했다고 해서 선입견이 상당히 컸다. 그래서 볼 수 있어도 일부러 안 봤는데 이번에 보니까 작품성으로는 정말 나무랄 데가 없다. 잘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가 제로센 개발자란 자체로 논란의 여지가 아주 높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적국이었던 일본과 치열하게 싸웠기 때문에 제로센으로 인한 희생자가 많은 나라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제로센 이 문제로 "The Wind Rises (바람이 분다)"를 비난하는 건 거의 듣지 못했다. 하긴 일반 미국인들이 역사에 관심도 많이 없지만, 제로센으로 희생당한 몇 천배는 원자폭탄으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날렸으니 응징은 이미 확실히 한 셈이기도 하다.

 

중국 쪽은 일본의 충칭 대공습만 해도 제로센이 투입되었고 충칭 대공습 때에 군인 및 특히 민간인 사상자의 수가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중국이라면 이 애니메이션이 불편, 아니 불쾌하기까지 하겠다 생각된다.

 

보는 내내 의문이 드는 건 왜 미야자키 하야오가 굳이 이 논란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호리코시 지로의 비행기 개발 열정을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는가 하는 거다. 작품 자체는 대단히 좋지만 이 작품을 둘러싼 여러 의견차로 상당히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제로센 개발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란 면에서는 시작부터 일본의 팽창주의 반대자나 반전주의자들에게 상당히 불편한 작품이다. 반면, 작품에서는 여러 번 일본과 독일의 전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일본 내 일부 사람들은 이걸 또 다른 식으로 불편하게 느낄 것 같다. 즉, 입장이 정반대인 사람들의 비난을 다른 이유로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만 가지고 봤을 땐 너무 잘 만들었다. 자신의 꿈과 열정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한 남자의 서사를 잘 풀어서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다. 작품 내내 제목대로 바람이 계속 부는데 아름답다. 그리고 비행기의 비행하는 장면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잘 묘사되어 있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의 연출과 연기에 너무 이질감을 느껴 몇 작품 보고는 그 이후 아예 관심이 없는데, "바람이 분다"는 완전히 다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모두 연기를 자연스럽게(?) 아주 잘한다. 일본의 사람 배우들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연출은 미야자키 하야오니 당연히 나무랄 데가 없다. 호리코시 지로와 사토미 나오코의 결혼 장면에서는 상당히 뭉클/울컥한 감정이 들어 눈물도 나온다.

 

호리코시 지로에게 비행기에 대한 열정은 Caproni (카프로니)가 말한 대로 "The Beautiful Curse"일지도... 하지만 그의 열정으로 탄생된 제로센은 애초 중일전쟁 폭격기를 호위할 목적의 전투기로 개발된 것이었기에 단순히 아름다운 저주라고 끝내기에는 씁쓸한 뒷맛이 길게 남는다.

 

어떤 것에 열정을 가지고 그 열정을 이루기 위해 꿈을 갖고 이뤄가려고 계속 노력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열정과 꿈이 살상의 무기로 사용될 것을 또는 다수의 사람들을 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본인이 이미 뻔히 인지하면서도 노력하는 모습이라면, 이걸 낭만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는 솔직히 쉽지 않다.

 

 

* 이미지 출처: Studio Ghibli/Walt Disney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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