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드라마 중 단연 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요 근래 본 드라마 중 최고다. 이건 내가 본 한국, 영국, 미국, 일본 드라마를 모두 다 포함해서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이하 모자무싸)"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이젠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시시해 보일 것 같다.

 

한국 드라마를 아주 많이 봤지만 이번에 종영한 "모자무싸"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회 하나하나가 잘 만들어진 영화 같다. 진정 명품 드라마다.

 

우선 소재가 계속 찍어내는 드라마와 다르다. 잔잔한 듯하지만 인물들 간의 갈등과 서사가 잘 부각되어 극을 이끈다. 극본이 너무 좋고, 연출이 너무 좋고, 출연한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좋다.

 

 

주인공 황동만은 엄청 찌질하고 존재 자체가 짜증을 유발한다. 이런 점 때문에 초기 1~2화에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거다. 황동만은 대학 다닐 때 룸메이트였던 박경세를 그의 작품과 영화로 가장 많이 갈구는데 진심으로 박경세가 안쓰러울 정도다.

 

현실에서 황동만 같은 사람이 있으면 안 보고 안 만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황동만이다. 주인공을 없앨 수는 없다. 주변 캐릭터들은 이 짜증 유발자 황동만과 계속 엮여야 한다.

 

초반에 황동만에게 너무 짜증이 나서 이 드라마를 계속 봐야 하나 고민했다. 그만큼 구교환 배우가 황동만 연기를 잘했다는 반증이다. 이 황동만의 찌질과 짜증 유발을 초반에 극복하고 잘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완전 몰입하게 된다.

 

아름다운 얼굴에 비례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고윤정 배우도 너무 좋아졌다. 예쁘다는 배우들의 연기가 진짜 너무하다 싶은 경우가 많은데, 고윤정은 변은아 배역 그 자체다.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절대 사라지지 않는 그 공포, 아픔 등의 복잡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해서 시청하면서 불쌍하면서도 이제 좀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변은아의 공포스럽던 어린 시절과 아직도 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재의 상황을 보면 그녀의 엄마 오정희가 참으로 비정한 여자다. 오정희에 대한 비호감이 꽉 차 오른다. 그런데 회차가 진행될수록 이상하게도 오정희의 매력에 또 빠지게 된다.

 

오정희는 업계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서 친딸과 의붓딸 모두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준다. 필요할 때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딸들의 일을 해결하는 데 앞장선다. 동시에 딸들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오정희가 친딸과 의붓딸에게 보여주는 이 행동은 나르시스트인 그녀가 자신을 지키려는 계산적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걸 오정희 방식의 모성이라고 봤다.

 

친엄마라는 사람이 어린 딸을 방치하고, 딸이 성인이 되고도 한참 지났는데 자기 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알아보지 않고 살았던 것엔 여전히 공감이 되진 않는다. 이런 데도 현재의 오정희의 모성에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작가의 필력, 섬세한 연출, 복잡한 캐릭터의 입체적인 면을 제대로 살린 배종옥 배우의 연기가 모두 힘을 발휘한 덕분일 거다.

 

마지막 11화와 12화에서는 특별히 슬픈 장면이 있고 그런 건 아닌데 눈가에 눈물이 맺히게 된다. 마지막 회가 빨리 마무리되는 감이 있던데, 12화 대신 13화로 1화를 더 추가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게 "모자무싸"에 대한 내 유일한 불만이다.

 

박해영 작가의 차기 작품이 벌써 기대된다. 다음 작품도 "모자무싸"를 연출한 차영훈 감독이 맡아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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