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이 되는 건가 했는데 향수어린 감성으로 남은 - 코쿠리코 언덕에서 (From Up on Poppy Hill, コクリコ坂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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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 넷째의 과제 때문에 "Princess Mononoke (모노노케 히메)"를 보려고 HBO에 가입했더니 스튜디오 지브리의 여러 애니메이션을 더 볼 수 있게 되었다.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 중 2006년 작품 "Tales from Earthsea (ゲド戦記,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과 2010년 작품 "Arrietty (借りぐらしのアリエッティ, 마루 밑 아리에티)"를 시작해 봤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모두 나랑 안 맞아서 보다 말았다.

 

특히 "Arrietty"는 영국 작가 메리 노튼의 "The Borrowers"의 원작으로 제작한 작품이라 나도 이미 아는 내용인데도 그렇게 흥미롭진 않았다.

 

 

그러다 어쩌다 걸린 작품이 2011년 발표된 "From Up on Poppy Hill (コクリコ坂から, 코쿠리코 언덕에서)"이다.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 중에 "From Up on Poppy Hill"이란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흥미가 갔다.

 

한국 제목이 "코쿠리코 언덕에서"인 것은 포스팅 쓰면서 알게 되었다. 전에 지브리 작품 중 무슨 언덕이 있는 제목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그게 "From Up on Poppy Hill"였던 거다. 

 

 

"From Up on Poppy Hill"의 시대적 배경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기 1년 전인 1963년이다. 배경 도시는 도쿄에서 멀지 않은 요코하마다.

 

전후 복구가 활발하게 이뤄져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 올림픽 개최를 1년 앞두고 활기가 넘치던 시기에 도쿄에서 멀지 않은 요코하마가 배경이라서 당시 일본의 역동적이고 희망적인 모습이 보인다. 내겐 1988년 서울 올림픽 전 서울과 경기지역의 분위기가 연상되기도 했다.

 

Umi Matsuzaki (松崎 海, 마츠자키 우미)의 집은 하숙집을 운영한다. 우미는 3남매 중 첫째인데 코난고교 2학년이다. 할머니가 계신데도 실제적인 하숙집 운영은 우미가 도맡아 한다. 할머니가 특별히 몸이 불편한 것 같지는 않은데 약간 의아했다.

 

여동생은 고등학교 1학년으로 1살 어린데 언니를 거의 도와주지 않는다. 존재감 거의 없는 막둥 남동생은 어리고 또 뭘 시켜도 말을 안 듣는다. 어머니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우미가 학교 다니면서 일을 다 하길래 혹시 친딸이 아닌 건가 했다.

 

우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중 민간 운반선으로 물자를 수송했는데 기뢰밭을 만나 운반선에 탑승한 전원이 사망했다. 매일 아침 우미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며 바다가 잘 보이는 집 앞 깃대에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깃발을 게양한다.

 

 

Shun Kazama (風間 俊, 카자마 슌)는 코난고교 3학년으로 교내신문 편집장이다. 학생회장 Shiro Mizunuma (水沼 史郎, 미즈누마 시로)는 슌의 친구로 철거예정인 클럽하우스 라틴 쿼터 (Latin Quarter)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라틴 쿼터는 교내 엉뚱이란 엉뚱이들은 다 모여 자신의 분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키우고 불사르던 아지트다. 이 라틴 쿼터를 지키려는 학생들의 노력이 모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클럽 활동의 본거지 라틴 쿼터는 남학생들만의 모여 활동하고 있었다. 대신 여학생들은 배드민턴 등 운동 쪽을 더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학생 전용이었던 라틴 쿼터는 대청소나 재정비를 하면서 여학생들도 적극적으로 라틴 쿼터 내 클럽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특이하게 느껴졌던 점은 코난고교가 남녀공학인 거다. 1960년대 일본에 남녀공학이 흔했나 싶어서 좀 특이했다.

 

 

이러저러하다 우미와 슌은 계속 연결이 되고 라틴 쿼터를 살리기 위한 함께 노력하면서 그들의 사랑이 싹트고 자란다. 이때 출생의 비밀이란 장애물이 등장한다. (출생의 비밀. 크아!)

우리가 서로 배다른 남매래.

 

장르가 막장 드라마로 변하려고 해서 이 부분에서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이 출생의 비밀은 순한 맛 버전으로 해결되면서 애니메이션은 막을 내린다. 막장으로 막 꼬이고 이상한 전개가 되는 게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빠들이 찍은 사진이 등장하길래 혹시 출생의 비밀이 나오는 건가 남편, 셋째, 막둥 넷째와 함께 농담을 했었다. 남편은 "설마 이복 남매인 거야?" 갑자기 이렇게 말해서 우리들끼리 막 웃었다.

 

여기까지 상상한 건 우리가 너무 나간 거다. 막장에 물들어 타락한 우리들의 감수성을 탓했다. 그런데 그 설마가 맞아떨어졌다. 약간 허탈...

 

이복남매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으니까 나름 우리들끼리 예상되는 전개를 생각해 봤다.

  1. 우미의 엄마가 사실은 다른 남자와 먼저 결혼해서 우미를 낳은 후 재혼한 거다.
  2. 우미가 사실은 친딸이 아니라 입양된 거다.

 

위 우리의 예상되는 전개는 다 틀렸다. 암튼 둘이 사랑을 키우는데 혈연상으로 문제가 없다는 건 확실해졌다.

 

우미와 슌이 1963년에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이었으니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또는 바로 직후에 태어난 1945-1946년 생일 거다. 전개 상으로 봤을 때 둘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고 나중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을 것 같다.

 

2025년 현재 79-80세 정도일 그들에게 손주들은 있겠고, 이제 증손주들까지도 있을 수 있다. 증손주들이 있는 그들도 한 때는 이렇게 순수하고 열정이 가득한 고등학생들이었다.

 

코쿠리코 언덕이 어째서 영어로 양귀비 언덕을 뜻하는 Poppy Hill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찾아보니까 코쿠리코는 양귀비를 뜻하는 프랑스어 coquelicot에서 온 거다.

 

* 이미지 출처: Ghibli Fan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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