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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기타

[미국 구전민담] 텍사스 카우보이 Pecos Bill (페이코스 빌)

* 이전 블로그에 올린 글의 내용을 수정해 다시 포스팅합니다.

 

진짜 말도 되지 않는 과장으로 재밌게 구전되고, 또 살이 붙어져 전해지는 이야기를 영어로 tall tale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에서 구전민담이라고 하는 게 아마도 tall tale에 제일 가까울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에서도 어떤 사건이나 자연풍경을 보고서 산신령이 돌을 떨어뜨렸는데 그게 산이 되었다라든가, 마고할미가 돌을 치마에 담아 가져와 성을 쌓았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전해지는 것들이 모두 tall tale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미국에도 이런 tall tale이 여러개 있습니다. 주로 서부로 서부로 진출을 하던 프런티어 시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거기에 살이 계속 붙여져서 해학과 과장이 가득한 모습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Tall tale의 특징을 본다면 인물들이 거인에 힘이 아주 센 경우가 많고,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어떤 행동이나 사건을 크게, 그것도 아주 크게 과장합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장을 하면서 살을 붙이니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나 크게 웃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미국 tall tale 중에서 제가 사는 애리조나 포함 미국 남서부와 관계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텍사스 카우보이 Pecos Bill (페이코스 빌)*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이 페이코스 빌에 대해서 소개해 볼까 합니다.

 

* Pecos는 페코스 보다는 일반적으로 페이코스로 발음합니다.

 

(출처: Google Images)

 

페이코스 빌의 가족은 주변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는 텍사스 오지에서 사는 걸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페이코스 빌 집의 근처로 이주하는 것이 보이니까 분비는 것이 싫다고 더 깊은 오지로 이사를 했어요. 그런데 페이코스 빌 가족이 분비고 있다고 느낀 거리가 바로 약 80km 정도예요. 800m, 8km도 아닌 "80km"입니다. 80km 정도라면 서울에서 경기도 평택까지의 거리와 얼추 비슷할 거예요.

 

이것은 미국 땅이 아주 넓다는 것과 미국인들 중에서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자기들만의 고유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유머스럽게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페이코스 빌 가족이 사람들이 분비는 것을 피해 이사를 했을 때 페이코스 빌은 아기였는데 Pecos River (페이코스 강)* 근처에서 마차에서 혼자 떨어졌습니다. 가족들은 그걸 모르고 계속 길을 갔고요. 아기는 야생 코요테 손에서 자라게 되었고 스스로를 코요테로 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친형(또는 텍사스 카우보이)에게 발견되어 그제야 페이코스 빌은 자기가 사람인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커서 카우보이가 되었죠.

 

* 페이코스 강은 Rio Grande (리오 그란데) 강의 지류로 뉴 멕시코에서부터 시작되는 강이에요. 예전에 지리 시간에 공부한 걸 기억한다면 리오 그란데 강은 아주 익숙한 이름일 거예요. 리오 그란데는 텍사스와 멕시코의 경계에 있는 강으로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이 됩니다.

 

(출처: Google Images, tshaonline.org)

페이코스 강은 리오 그란데 강의 지류로 뉴 멕시코에서부터 시작되는 강입니다.

리오 그란데 강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입니다.

 

리오 그란데 강과 만나는 곳 근처의 페이코스 강 (작가: Badener, 출처: Wikipedia)

 

페이코스 빌은 방울뱀 Shake (쉐이크)를 올가미 밧줄로 쓰고 다른 뱀은 채찍으로 썼다고 하고요. 그리고 아주 거친 야생마 Widow-Maker (위도우-메이커, 과부 만드는 자)를 길들여 자기 말로 타고 다녔어요. 위도우-메이커는 페이코스 빌 외에는 그 누구도 탈 수 없었죠.

 

이 거친 말을 겁없이 탄다면... 그럼 말 탄 남자의 아내는 말 이름 위도우-메이커 대로 과부가 된다는 전설이... ^^ 페이코스 빌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다이너마이트랍니다. 위장이 참 튼튼한 카우보이예요.

 

언젠가 페이코스 빌이 사는 텍사스에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강은 말라가고 산불은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끔찍했죠. 페이코스 빌이 올가미 밧줄로 멕시코만의 물을 끌여들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목장의 말들과 소들도 물이 부족해서 말라가고 사태가 심각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 멀리에 검은 먹구름과 토네이도가 보이는 거예요. 페이코스 빌은 올가미 밧줄로 이 토네이도를 낚아채 텍사스를 가로지르게 했습니다. 토네이도는 야생마처럼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페이코스 빌이 한 수 위였죠. 토네이도를 말처럼 타고 텍사스 여기저기에 비를 잔뜩 뿌리게 만들었습니다.

 

텍사스에만 비가 내리게 했냐? No, no. 텍사스 옆동네 뉴 멕시코, 그리고 애리조나에까지도 비를 흠뻑 내리게 해줬습니다. (잘한다, 페이코스 빌!) 이 토네이도는 캘리포니아에서 쪼그라들었는데 그제야 페이코스 빌이 토네이도에서 뛰어내렸어요.

 

페이코스 빌이 내린 그 자리가 바로 캘리포니아의 Death Valley (데스 밸리). 데스 밸리는 지구 상에서 가장 고온을 기록한 곳인데 죽음의 계곡 데스 밸리란 이름이 그냥 나온 건 아니랍니다. 그리고 이곳은 고도가 해수면보다 낮습니다. 이렇게 고도가 낮은 것은 페이코스 빌이 바로 여기에 내렸기 때문에 땅이 푹 꺼진 거라는...

 

Zabriskie Point에서 바라 본 데스 밸리 풍경 (출처: National Park Service)

 

어느 날 페이코스 빌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 강인 리오 그란데 강가에서 엄청 큰 메기를 타고 있는 여인을 보게 됩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Slue-Foot Sue (슬루-풋 수) 구요. 슬루-풋 수에게 완전히 빠진 페이코스 빌이 프러포즈할 때 하늘의 별을 다 쏴서 떨어뜨렸대요. 하지만 딱 한 개만 남겨두고요. 그 한 개 남은 별이 바로 The Lone Star (더 로운 스타, 홀로 별). 텍사스의 별명이 바로 더 로운 스타니까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아시겠죠?

 

(출처: Google Images)

 

슬루-풋 수와의 결혼식날 슬루-풋 수가 페이코스 빌 외에 탈 수 없는 위도우-메이커를 타고 싶다고 했어요. 페이코스 빌이 말렸는데도 슬루-풋 수는 말위에 오르고 위도우-메이커는 미친 듯이 날뛰었죠. 그동안 페이코스 빌이 슬루-풋 수에게 빠져있어서 위도우-메이커가 질투를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위도우-메이커는 이때만큼은 자기 이름을 Widower-Maker (위도워-메이커, 홀아비 만드는 자)로 바꾸고 싶었던 것 같아요.

 

슬루-풋 수는 위도우-메이커 등에서 튀어나가 텍사스 하늘 위로 위로 떠올랐어요. 하늘 위로 떠올랐다가 땅으로 떨어진 슬루-풋 수는 치마의 뒷부분 패티코트 스프링덕에 땅에 닿자마자 튕겨져서 다시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는... 띠용~~~! 이때 페이코스 빌이 올가미 밧줄로 슬루-풋 수를 잡았죠.

 

이후 페이코스 빌과 슬루-풋 수 부부는 땅에 자리 잡고 사는 대신에 달에 정착을 했다네요. 달에서 야생 코요테를 키우며 살고 있대요. 가끔씩 페이코스 강 근처에서 천둥이 쿠릉쿠릉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페이코스 빌 가족들이 저 위 달에서 웃고 있는 거랍니다. 그리고 밤에 이상한 아우 우우~ 우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페이코스 빌이 달에서 아우 우우~ 우는 소리를 내는 거고요. 밤하늘에서 별똥별을 보게 되면 그건 페이코스 빌과 그의 아내 슬루-풋 수가 별똥별을 타고 있는 것이랍니다.

 

위 이야기는 페이코스 빌의 한 가지 버전입니다. 사람들이 재미로 살을 붙이는 구전민담이기 때문에 약간 다른 버전들도 있어요. 하지만 페이코스 빌이 텍사스 카우보이에 토네이도를 타고, 야생마 위도우-메이커를 길들여 타고 다니고, 페이코스 빌 못지않은 아내 슬루-풋 수와 결혼한 것은 공통적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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