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한국 드라마를 이미 다 봤든지, 아님 뭐가 재밌는지 잘 몰라서 그런가, 요즘 넷플릭스의 한국 작품 중에서 보고 싶은 게 없다. 그러다 남편이 재밌어 보인다며 일본 드라마 하나를 찍었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는 애니메이션 같은 과장된 연출과 연기가 계속 등장해서 내겐 불편하다.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좀 걱정스러웠지만 남편이 함께 보고 싶다고 하니 한번 시작해 봤다.
남편이 찍은 일본 드라마는 2016년 작품인 "The Full-Time Wife Escapist"다. 예전부터 넷플릭스에서 이 작품을 여러 번 대쉬보드에서 봤지만 제목이 이상스럽고 유치해서 일부러 안 봤던 거다. 이 드라마는 만화를 원작이라고 하는데 다른 영어 제목으로 "We Married as a Job"도 있다. 만화 쪽에서는 "We Married as a Job"을 영어판 제목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일본 원작 제목은 "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다. 한국어판 제목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이 일본판 제목을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영어로 번역하면 running away is shameful, but useful 정도 될 텐데 이러면 제목이 너무 길어져서 다른 제목으로 수정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드라마 상에서 헝가리 속담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기억한다.
결론적으로 이 일본 드라마 재.밌.다. 그리고 유쾌하다. 애니메이션적인 부분이 있긴 한데 지나치지 않아서 불편함이 안 느껴진다. 재밌으면서도 일본 내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본에서는 현재 젊은 층들이 일자리 얻는 게 힘들지 않다고 하는데 문과 쪽 졸업생들의 취업은 어려운 것 같다.
25세 모리야마 미쿠리 (아라가키 유이)는 심리학과 전공으로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잘 안 돼서 대학원에 진학해 졸업했다. 그런데도 취업은 여전히 잘 되지 않는다. 임시적으로 근무를 했지만 일을 잘해도 고학력이란 이유로 오히려 계약연장 없이 해고당한다. 그러다 아버지의 소개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츠자키 히라마사 (호시노 겐)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을 하게 된다.
35세 히라마사는 일본 교토대학 출신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능력 있는 남자지만 모태솔로에 이성 앞에서는 자존감은 바닥이다. 공부/일만 잘하는 범생이 스타일. 이성 앞에서 자신이 없으니까 스스로를 프로 독신남이라며 위로하며 산다. 미쿠리가 히라마사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다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미쿠리의 취집 (취업+시집) 생활이 시작된다.
미쿠리가 히라마사 보다 10살 어리지만 그녀는 여러 면에서 적극적이다. 이 모습이 아주 매력적이다. 미쿠리가 자기 전공인 심리학을 바탕으로 히라마사를 키워가는(?) 듯하다. 과거 미쿠리의 남친과의 관계를 봤을 때 미쿠리는 원래 성격이 그런 스타일이다. 하지만 히라마사 같은 사람에게는 미쿠리 같은 여자가 딱이긴 하다.
히라마사를 보고 있지만 답답해 죽겠다. 히라마사도 나중엔 자기감정과 표현에 솔직해져서 덜 답답해진다.
한국에서도 가끔 다루는 선결혼 후연애 그런 구조의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주연 배우인 미쿠리 역의 아라가키 유이와 히라마사 역의 호시노 겐은 실제로도 이 드라마 이후 2021년에 결혼했다고 한다.
미쿠리와 히라마사 주변 인물들도 개성 있고 재밌다. 미쿠리의 이모 츠치야 유리 (이시다 유리코)는 성공한 49세 미혼의 커리어우먼이다. 유리를 통해서는 성공한 미혼의 그 나이대 여성들의 현실적인 모습도 비쳐주고 있다.
히라마사의 직장동료인 누마타 요리츠나 (후루타 아라타)는 지나친 염탐이 체질인 인물이다. 그의 행동이 좀 거슬리는 편인데 이 아저씨가 또 상당히 웃기기도 하다. 촉이 좋아서 주변 사람들과 상황에서 정보를 대단히 잘 캐낸다. 그런데 그 정보를 취합해 엉뚱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 또한 특출하다. 그의 거슬리는 염탐 행동은 엉뚱한 결론으로의 도출이라는 코믹함으로 약간 상쇄된다.
본편은 11화까지는 2016년에 방송되었고, 12화 스페셜 에피소드는 2021년 1월에 방송되었다. 12화 스페셜 에피소드는 2시간으로 이전 에피소드들보다 2배 이상 길다.
12화 에피소드 중반까지는 몇 가지 일본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공익방송을 보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가 떨어진다.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중반 이후부터는 전 세계가 COVID 팬데믹의 막대한 영향을 받았던 2020-2021년을 다루는데 이 부분에서는 감정이입되어 정말이지 울컥했다. 세계사에 두고두고 남을 그 힘들었던 COVID 팬데믹의 시기를 우리 모두 잘 견뎌냈다.
각 에피소드가 끝난 후 마지막에 출연 배우들이 댄스를 추는데 아주 귀엽다. 이 댄스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이미지 출처: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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