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깔끔하고 청정한 드라마를 봤다. 이와 비슷한 드라마로 "동백꽃 필 무렵"이나 "갯마을 차차차"를 본 적이 있긴 한데 개인적으로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완성도가 제일 높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본 한국 드라마 중에서 제일 좋았다.
이 드라마에서도 살인사건이 등장하는데 이게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가 살인을 하며 극의 긴장감을 주는 게 아니다. 솔직히 한국 드라마에 정신이상자의 범죄가 너무 지나치게 많이 등장해서 드라마 보는 자체를 피곤하게 한다. 이런 정신이상자의 공포 범죄는 로맨스, 코미디 이런 장르에도 상당히 높은 비율로 등장한다. 그래서 보다가 피곤감이 몰려와 그만 본 한국 드라마도 많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도 2건의 살인사건이 등장하지만 이게 주요 주제는 아니다. 첫 번째 살인사건으로는 어린 시절 절친들이 헤어져 살게 되고, 두 번째 살인사건으로는 이 모든 절친들이 다시 만나게 된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이 절친들과 주변 인물들을 보는 재미가 상당히 솔솔 하다. 이제는 어린 시절 절친+α가 되었다.
대부분 32살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김백두 캐릭터는 아주 순수하고 귀엽다. 김백두는 거의 모든 면에서 빠릿빠릿하지 않은 듯한데 어떤 한 부분에서는 촉이 아주 발달되어 남들이 못 알아챈 걸 혼자만 딱 알아챈다. 거기에 어린 시절 동네를 주름잡던 골목대장 두식이, 듬직한 진수, 중요한 부분에서 눈치가 정말 없는 석희 등등... 아역 배우들의 연기도 상당한 수준이고 나중 성인 배우들과의 싱크로율도 아주 높다.
등장하는 강아지 흰둥이 마저 귀엽다. 아 아이는 "성실하게" 집을 나가 돌아다닌다. 덕분에 일없이 심심한 동네 경찰이 흰둥이를 잡으러 다니느라고 그나마 일을 하게 만든다. 흰둥이가 최근에 출산을 했다 하는데 출산우울증 해소에는 바람도 쐬며 동네를 뛰어 쏴 돌아다니는 것도 좋을 거다.
예전에 잘 만든 일본 드라마 중에 소소한 서민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잘 풀어간 걸 가끔 볼 수 있는데 "모래에도 꽃이 핀다"가 그렇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한국적 세련미의 힘을 입어 일본의 비슷한 드라마보다 훨씬 완성도 있는 좋은 작품으로 나왔다.
가상의 도시 거산의 씨름 사랑도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준다. 내가 씨름팬이 아니라 씨름에 대한 자세한 디테일은 모르지만 씨름을 어쩌다 보는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경기장면이 상당히 잘 연출되었다. 배우들의 씨름하는 모습이 내 눈에는 전문 선수 같다. 씨름 장면의 연출과 촬영도 좋아서 박진감 있다.
정신이상자의 연쇄살인 또는 범죄도 없고 (비슷한 게 나오긴 하지만 그게 극의 긴장감을 이끄는 건 아니다), 재벌도 등장하지 않고, 거대 악도 없고, 치졸한 계략이나 음모도 없고, 눈살 찌푸리게 하는 치정이나 불륜도 없고. 드라마에 스트레스 많이 받지 않고 편하게 즐기면서 볼 수 있다.
마산을 연상시키는 경상남도의 거산이 배경이라 대부분이 경상도 사투리로 나온다. 비 경상도 출신으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사투리의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하고, 또 가짜와 찐 경상도 사투리의 구분도 잘 못하지만 듣기에 사투리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 12화까지 다 보고 났더니 나도 모르게 경상도인으로 패치되어 사투리가 그냥 나오려고 한다.
요즘 미국에서도 K-드라마가 상당한 인기인데 한국 스포츠인 씨름을 배경으로 한 깔끔하고 청정한 드라마를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 이미지 출처: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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