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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기타

스파르타쿠스 (Spartacus)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로마역사 4/4

* 2011년 2월 20일 다른 블로그를 운영할 때 포스팅했었던 글입니다. 당시 인기 있었던 TV 시리즈 "스파르타쿠스: 피와 모래 (Spartacus: Blood and Sand)"와 연결해 로마의 역사를 4부로 나눠 간단하게 정리했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 노예반란 진압 이후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는 함께 집정관로 선출되는 등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최종 권력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키워나갑니다. 여기에 갈리아 (Gaul) 쪽에서 승승장구하면 인기가 높아진 카이사르까지 합세해 이 3 사람이 실질적으로 로마를 다스렸던 삼두정치 (Triumvirate)를 하고요. 이를 로마의 첫 삼두정치 (The first Triumvirate)라고 합니다.

 

왼쪽에서부터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스파르타쿠스의 노예반란을 진압한 크라수스는 나중에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에 버금가는 전승을 위해 파르티아 (Parthia) 원정을 갔다가 카르하이 (Carrhae, 현재의 터키 지역) 전투에서 패해 죽게 됩니다 (BC 53년). 크라수스의 경우 돈은 엄청 많았지만 군사적으로는 그렇게 탁월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공 세우기가 뭔지 무공을 세워 명예를 떨치겠다는 것에 너무 집착해 전쟁터에서 패하고 죽게 된 거지요.

 

폼페이우스는 폼페이우스 대로 카이사르와의 경쟁에서 지고 이집트로 도망갔다가 그의 58세 생일날 이집트 프톨레마이우스 13세 (Ptolemy XIII)에게 살해당합니다 (BC 48년). 카이사르도 다 알다시피 완전한 권력을 잡기 바로 직전 암살됩니다 (BC 44년). 이것으로 첫 삼두정치 3인의 운명은 막을 내립니다.

 

카이사르의 죽음 이후 새로운 권력자로 카이사르의 조카 손자이자 양자였던 공식적인 승계자 옥타비아누스 (Gaius Octavius, 나중에 아우구스투스 Augustus), 카이사르의 충실한 지지자이자 옥타비아누스의 자형이었던 안토니우스 (Mark Antony) 그리고 레피더스 (Marcus Aemilius Lepidus)가 함께 두 번째 삼두정치 (the second Triumvirate)를 시작합니다.

 

왼쪽에서 부터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더스입니다. 안토니우스는 꽤나 잘 생겼었다고 들었는데 조각상부터가 다르네요.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미남형이에요.

 

왼쪽에서 부터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더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간의 권력 경쟁에 클레오파트라 7세 (Cleopatra VII)가 끼고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 누나인 옥타비아 (Octavia the Younger)와 이혼하자 명분만 기다리고 있던 옥타비아누스에게는 좋은 구실이 생겼어요. 결국 로마 공화국으로서 마지막 전쟁이 된 악티움 해전 (Battle of Actium, BC 31년)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은 패합니다. 이 승리는 옥타비아누스를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로 등극시켜 제정시대로 들어가게 하는데 결정적인 획을 긋게 하죠.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4년 후인 BC 27년, 로마 황제로 등극해 아우구스투스 (Augustus)라는 칭호를 얻습니다.

 

딸 하나만 두었던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로 양자이자 사위인 티베리우스 (Tiberius)가 황제가 되었습니다. 티베리우스 이후 미친 광기의 대명사가 된 아우구스투스의 증손자 칼리큘라 (Caligula)가 황제가 되고, 그 이후 티베리우스의 조카이자 칼리큘라의 삼촌인 클라우디우스 (Claudius)가 황제가 됩니다.

 

칼리큘라의 여동생 아그리피나 (Agrippina the Younger)는 정치적 야심이 대단한 여자였어요. 정략적으로 친삼촌인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하고 자신의 아들 네로 (Nero)를 양자로 삼게 합니다. 나중에 클라우디우스는 "편리"하게도 죽어 주고, 네로가 황제가 됩니다.

 

그가 바로 시의 영감을 얻고자 로마를 불태웠다는 유명한 폭군 네로입니다. 요즘은 네로가 로마에 불을 지르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화재진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주장도 있더군요. 아무튼 혈통으로 따지면 그는 아우구스투스의 고손자입니다. 그래서 이 황제 가계를 쥴리오-클러디언 (Julio-Claudian) 가계라고 부릅니다. 이 쥴리오-클러디언 가계는 위에 언급한 라인에 따라 약 100년간 지속되다가 네로의 자살을 마지막으로 끝나게 됩니다 (AD 68년).

 

이 이후의 로마역사까지 다루는 것은 너무 길어서 제가 시간 내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말씀드리더라도 스파르타쿠스 TV 시리즈를 즐기는 것은 전혀 부족이 없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스파르타쿠스 시리즈는 당시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선정적인 면이나 폭력, 액션만 치중하지 마시고 당시의 생활상과 역사적인 배경까지 고려하면 참 즐거운 시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잣대로 당시의 로마를 평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생각, 철학, 종교 그 모든 것이 전혀 다른 시대이고 다른 사람들입니다.

 

고대시대의 노예는 가축과 인간의 그 사이 정도에 있는 존재로 주인의 재산일 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피부색이 노예의 기준이 아니었고요. 태어나면서 노예가 되었든, 정복에 의해 노예가 되었든, 또는 빚 때문에 노예가 되었든 그 어떤 이유로도 노예가 되면 그 노예는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노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예 스스로 그의 가치를 입증해야 합니다. 검투사는 챔피언이 되어 능력을 입증하면 자유인이 될 수 있고, 노예가 주인을 도와 사업을 크게 성공시키면 그 대가로 자유인이 되기도 했어요.

 

노예 입장에서 노예가 인간이 아니라는 관점은 정말 무섭지요. 지금도 일부 제3세계 국가에는 주인의 재산인 노예로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국가들 스스로는 법적으로 노예가 없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관습법처럼 노예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근대적인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현대국가에서는 노예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의 현대사회에 정말 노예가 없을까요???

 

* 이미지 출처: Google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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