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대만(타이완)을 여행하던 중 로망을 쫓아 엉뚱한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해 이웃 블로그지기님께 댓글로 간단히 쓴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엉뚱 행동 이야기를 재밌어하시더군요. 그래서 그 대만 여행과 그때 이야기를 조금 할까 해요. 그러고 보면 미혼이고 어릴 때에 엉뚱한 짓을 좀 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사실 애리놀다가 평소에도 좀 엉뚱한 경향이 있긴 하지만요.
머리털 나고 처음 비행기 타고 한국 밖 해외에 나가 본 것은 1990년대 어느 추운 1월 프랑스 파리였어요. 출장때문에 간 거라 일만 죽어라 열심히 하고 (성격상 꾀를 잘 못 부려요. ㅠㅠ) 그러느라고 해외에 대한 감흥이 별로 없었어요. 하루 일정 마치고 짬 내서 탔던 세느강 유람선에서도 피곤해서 졸다 왔으니까 말 다했죠.
그러다가 프랑스출장 이후 여행다운 여행을 너무나 하고 싶었던 그해, 여름휴가를 이용해 대만에 가게 되었습니다. 해외 첫 여행지로 대만을 선택하게 된 것은 당시 어찌어찌하다가 며칠간 머물 수 있는 지인 몇이 대만에 있었거든요.
1945년 이전의 대만에는 최초로 정착한 오스트로네시아계(Austronesian) 원주민과 17세기부터 중국 남부에서 이주해온 중국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대만을 식민 지배하던 일본이 1945년 패망하고 장제스(장개석) 국민당 정권은 중국 공산당에게 패해 대만으로 쫓겨오면서 많은 본토 중국인이 함께 몰려와 살게 되었죠.
그래서 대만인들은 크게 보면 오래 전부터 터 잡고 살던 본성인(本省人)과 1945년 이후 이주해 온 본토계 외성인(外省人)으로 나뉘는 것 같더라구요. 정치 및 경제적인 실권은 1945년 이후 이주해 온 외성인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고요. 애리놀다가 처음 며칠 동안 묵었던 타이페이(臺北市 또는 台北市, Taipei)의 지인도 외성인 집안이었습니다.
애리놀다 기억 속의 1990년대 대만은 한국하고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릅니다. 그중 하나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아침에 TV 프로그램을 보면 40~50대 정도 되는 여성들을 상대로 한 간단한 읽기강좌가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 상식에 간단한 읽기 강좌나 읽기 프로그램 같은 건 유치원이나 미취학 아이들용이잖아요. 이상하기도 하고 또 궁금해서 물어봤죠. 그런데 이게 또 대만 근대사와 연관이 있더군요.
대만에 본토 중국인(외성인)들이 정착해서 살면서 오래 전부터 대만에 살던 주민들(본성인)에게 많이 못되게 했었어요. 그래서 애리놀다가 들은 바로는 본성인 부모들 중 많은 분들이 자녀, 특히 여자아이들을 일부러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1990년대 당시에 40~50대 아주머니들 중 문맹인 분들이 많게 된 거죠. TV에서 봤던 읽기 강좌는 그분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글과 달리 한자는 배우는 것이나 익히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서 대만의 문맹인 분들은 생활에 불편한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한국의 상황을 돌이켜 봐도 1950~1953년 한국전쟁과 그 이후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분들이 많이 계셨을 듯하고요. 물론 사회적 눈이 두려워 대놓고 학력을 말하지는 않았지만요.
사실 이건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이지 그분들의 잘못이 전혀 아닌데 글을 못 읽으면 무시하던 경우도 종종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한글이 배우기도 읽기도 쉬워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애리놀다가 대만을 여행하면서 들은 이야기인데 그냥 곁다리로 말할게요. 1990년대 당시 대만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예정자 중 남학생이 대학입시에 실패하면 재수를 할 수 없고 곧바로 군대에 입대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돈 좀 있는 집안(대부분 외성인 집안) 아들들이 대학입시에 실패하면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중국 본토 대학으로 유학을 시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중국 본토에도 대만인들(특히 남학생들)이 유학을 많이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해 들은 것이고 1990년대의 이야기이예요. 지금은 2010년대니까 그동안 대만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되어요.
대만 여행 중 타이페이에서 며칠 묵고 그러고 나서 대만 남부에 있는 제2 도시 가오슝(高雄市, Kaohsiung)으로 옮겼어요. 대만에서 가오슝의 발음을 카오슝에 가깝게 들어서 그런가 했는데, 찾아보니까 한국어로는 가오슝이 표준 발음이네요. 가오슝에서도 호텔이나 모텔이 아닌 대만 지인의 친구네 집에서 묵었습니다. (약간 복잡한 관계도... 이제 보니 애리놀다에게 빈대의 느낌이 살짝 풍기는 듯해요.)
대만에 가보니까 타이페이나 가오슝이나 잘 사는 분들도 공동주택에서 많이들 사시더군요. 그렇다고 한국식 공동주택이 아니고 한 층에 한 가정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건물 외관은 그저 그런데 집안 인테리어나 생활수준은 아주 높았고요.
가오슝 친구의 집은 주택이긴 한데 길거리 상가와도 지척이었어요. 가오슝에 머물면서 또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찬란한 외국의 햇빛 아래 아침 조깅이라는 로망을 떠올렸죠. 이게 또 그렇게 하고 싶었었거든요. 그래서 아침 한 7~8시쯤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혼자 거리로 나갔습니다.
가오슝의 아침 햇살은 정말 찬란하고 아름다웠어요. 상가가 있는 거리에는 할아버지 느낌 나는 아저씨들이 아침 일찍부터 야외 간이 테이블에 많이들 앉아 계시더군요. 애리놀다야 해외에서 조깅이라는 로망을 실현하는 중이라 열심히 뛰고 있었고요.
조깅을 하면서 살펴보니, 길거리 테이블에 앉아있던 아저씨들의 온 시선을 애리놀다가 한 몸에 받고 있는 거예요. 가오슝 햇살보다 이 시선이 엄청 더 따가웠습니다. 예뻐서 그렇게 쳐다본다기보다, 낯선 젊은 처자 하나가 아침부터 거리를 뛰어다니니까 그분들에게는 너무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 같아요.
다들 표정이,
쟤는 도대체 뭐니?
이렇더라고요. 흑~ ㅠㅠ
지금 한국에서도 지방도시에서 아침 7~8시쯤 낯선 여자가 상점이 열리지도 않은 또는 막 하루 장사를 시작하려는 그 시각에 거리를 뛰어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이것도 좀 어색한 광경이 아닐까.... 그러니 대만이든 한국이든 1990년대 낯선 처자의 일상을 벗어난 아침 조깅이 동네 아저씨들에겐 아주 어색했었을 거예요.
첫날 아침 조깅으로 이미 워낙 많은 관심을 한 몸에 받은지라 너무 부담스러워서 딱 하루 나가서 뛰고 그다음부터는 안 뛰었어요. 진짜 한 번이면 충분한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다행히 대만인과 차이가 나지 않는 동양인이라 이 정도였지 많이 다르게 생겼다면 더 대단한 시선집중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봐요. 휴우~ 역시 로망과 현실은 그 괴리감이 엄청 큽니다. 로망은 로망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때도 있어요.
이랬거나 저랬거나 당시는 20대였으니까 여러 경험도 하고 해외 조깅의 로망 실현 같은 엉뚱한 행동도 하면서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만 여행 몇 년 후 호주로 혼자 배낭여행 갔을 때는 더 엉뚱한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위험하기도 한) 행동을 겁도 없이 척~ 하기도 했었고요.
물론 지금도 엉뚱한 행동을 가끔 하긴 합니다. 그런 엉뚱함이 바로 애리놀다니까 그냥 즐기면서 살려구요. 이런 애리놀다 덕분에 남편이나 아이들도 심심하지 않고 즐거운 것 같기도 하고요.
* 사진출처: Wikipedia & Google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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